막시민은 몇 년 전에 배를 타고 켈티카 만으로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때는 강이 아니라 바다 쪽에서 들어왔었다. 길었던 항해를 막 마치려던 참이었다.
여름이었다. 그날은 '용의 입'에서 내뿜는 흰 입김이 없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갑판에 나와 서성거렸던 것 같다. 먼발치에 또렷이 드러난 해안선을 바라보자 안심이 되었다. 이제부터는 일이 잘 풀릴 것만 같았다. 그날은…….
그 배에는 여러 사람이 타고 있었다. 친구들, 든든한 보호자, 그들을 지켜주려 하는 유능한 사람들, 그 속에서 자신은 그들의 일원이었고 중요한 일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믿으려 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는 입장이 되니 잘 보였다. 믿고 싶었다고. 자신의 가치를.
하지만 켈티카에 다다라 맞았던 새벽은 그렇게 잘 풀리지 않았다.
그날, 처음으로 막시민의 눈앞에 세계가 약간 윤곽을 드러낸 듯했다. 거대한 바위 절벽처럼 솟아올라 눈앞에 버티고 서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온 몸이 부서지도록 부딪혀도 뚫을 수 없는 벽, 틈새 없는 바위의 존재를. 그런 건 없다고, 계속해서 부정하며 할 수 있는 일을 향해 덤벼들었다. 세계를 바꿀 수 있다고, 비집고 들어갈 곳을 찾을 수 있다고, 파고들다 보면 틀림없이, 한 점 약한 곳이 있다고.
정작 진짜로 틈새 없는 벽과 마주하게 된 건 그때 중요하게 생각한 모든 일이 끝난 다음이었다. 그제야 알게 됐다. 그때까지 자신이 믿었던 자신의 가치란 자신 속에 들어 있지 않았음을.
전민희, 룬의 아이들 블러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