킷은 아무 말 없이 상자의 끈을 풀고 뚜껑을 열었어. 그리고 덮어놓은 포장지를 벗겨내더니 나한테 상자를 내미는 거야. 소피, 아이는 뒤로 물러서서 내가 상자 안을 뒤적이며 그 안에 든 물건들을 모두 꺼내 침대 위에 늘어놓는 동안 계속 내 표정을 살폈어. 상자 안에는 이런 것들이 들어 있었어. 구멍 장식이 촘초히 난 아주 조그만 아기용 베개, 밭일을 하다가 도시를 향해 웃음을 짓는 엘리자베스의 사진 한 장, 희미하게 재스민 향이 나는 여성용 리넨 손수건, 남자 것인 도장 반지, 그리고 작은 릴케 시집이 한 권 있었는데 가죽 표지에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었어.
'엘리자베스, 어둠을 빛으로 바꾸는 그대에게. 크리스티안.'
책갈피에 여러 번 접힌 쪽지가 있었어. 킷이 고개를 끄덕이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쪽지를 펼쳐 읽었지.
'아멜리아, 아기가 깨어나면 나를 대신해 뽀뽀해주세요. 6시까지 돌아올게요. 엘리자베스가. 추신, 우리 아가 발이 세상에서 제일 예쁘지 않아요?'
메리 앤 셰퍼,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