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마차가 떠나갔다. 함께 내린 사람들은 순식간에 흩어졌다. 길 모르는 시골뜨기처럼 서 있는 사람은 막시민뿐이었다. 그는 서두르는 대신 주위를 휘둘러보며 잠깐 옛 일을 떠올렸다. 그리 오래된 옛날도 아니다. 그래서인가 더 생생하게 눈을 스쳤다. 셋이서 허름한 옷을 입고 이 광장을 지나쳐 술집에 갔고, 다시 반대로 통과해 의상실이라는 곳에도 갔었다. 그때는 그 순간을 좋아했다는 걸 잘 몰랐던 것 같다. 다시 되풀이되기 힘든 순간이라는 것도 몰랐던 것 같다.
뭐랄까, 이 모습 자체가 켈티카에 다다를 때부터 줄곧 머릿속을 맴돌던 시절을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라고 딱 잘라 말할 순 없지만 잃었다는 것만은 알았던 순간들을.
기억이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는 곳에서 그건 그때도 내 몫이 아니었다고, 되찾을 수도 되찾아서도 안 된다고, 그리고 지금은 다른 누군가가 되어야 하니까 더 생각하지 말자고 애쓰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 뛰어들어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지나가버린 페이지에 미련이 남아 뒤적이고 있는데 불쑥 내민 손이 차르륵 넘기더니 새 페이지를 펴 가리키며 '여기를 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상대가 이스핀이어서는 아니었다. 그 정도로 잘 아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저 우연히, 언젠가 좋아했던 풍경을 빈 종이에 끄적여본 듯 닮은 것뿐이었다. 그 여름이 꼭 저런 색깔이어서. 다 알지만, 그런 채로도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주 약간 숨이 막히는 것 같다.
전민희, 룬의 아이들 블러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