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얇은 휘장처럼 발밑으로 흘러갔다.

잔 얼음이 사그락대며 귓가를 스쳤다.

달이 지평선 아래로 기울자 별들이 얼음 조각처럼 쏟아졌다.

 

마침내 그들은 어딘가에 다다랐다. 섬의 끝인지 세상의 끝인지 모를 그곳에 은회색으로 얼어붙은 호수가 있었다. 리라가 다가가 손끝으로 건드리자 금빛이 퍼져나가며 얼음이 녹았다. 동시에 세상에도 아침이 왔다. 호수를 비춘 찬란한 빛 속에 섬 하나가 빛나고 있었는데 마치 방금 솟아오른 것 같았다.

 

그곳에서 줄리앙과 리라는 같이 살았다. 처음엔 집을 지었다. 방이 하나뿐인 아주 작은 집이었다. 창은 둥글게 내고 지붕은 나무껍질과 이끼로 덮었다. 아침에는 이슬과 나무딸기를 먹고 저녁에는 리라가 손짓만으로 만들어주는 구름 같은 머핀을 먹고 꿀을 넣은 차를 마셨다. 줄리앙은 피리 부는 법을 배웠다. 요정들은 말 잘 듣는 아이들처럼 그들 곁에서 뛰어놀았다. 피리 소리가 들리면 모여서 춤을 추었다.

 

여름에는 물레를 돌려서 실을 잣고 천을 짰다. 요정들이 입는, 가볍고 얇지만 덥지도 춥지도 않은 그 천이었다. 가을에 크고 작은 옷을 지어 집앞에 펼쳐놓자 동물들이 와서 입고 하얗고 토실토실하게 변해서 갔다.

 

얼마나 긴 시간이었는지 알지 못했다. 하루가 몇 분 같기도 하고, 한 계절이 하루 같기도 했다. 금빛 화살 한 대가 날아가듯 식간이 흘렀다. 호숫가에는 은방울꽃이 피었고, 떡갈나무 잎이 우거졌고, 단풍이 불탔고, 마침내 흰 담요 같은 눈이 내렸다.

 

곧 다시 봄이었다.

 

 

바람이 불더니 앵초 꽃밭이 설탕처럼 바스라져 사방으로 흩날렸다. 그 다음에는 집이 수천 개의 반딧불로 변해 하늘 위로 날아갔다. 사방은 곧 텅 비고 고요하고 캄캄해졌다. 아무 때나 놀러오던 동물들도 간 곳이 없었다. 요정들이 다가와 두 사람을 둘러쌌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둘은 다시 초승달처럼 휘어진 섬 위를 날아갔다. 요정들은 따라오지 않았다. 바람은 올 때보다 따뜻한 것 같았다. 지평선에 해가 걸려 있었기에 세상은 발그레한 주홍빛으로 가득했다.

 

둘은 다시 처음의 바닷가에 내려섰다. 파도가 발치를 간질이듯 찰랑거렸다.

 

전민희, 룬의 아이들 블러디드

 

 

 

2024. 3. 21. 0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