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반에서 밥공기를 꺼내 블루베리 봉지를 뒤집었다. 보라색 얼음 조각 하나만이 툭 떨어질 따름이었다.

 

그때, 영원할 줄 알았던 재희와 나의 시절이 영영 끝나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나 때에 맞춰 블루베리를 사다 놓던 재희. 내가 만났던 모든 남자들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는, 내 연애사의 외장하드 재희. 아무 데서나 담배를 피우며, 가당찮은 남자만 골라 만나는 재희.

 

모든 아름다움이라고 명명되는 시절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가르쳐 준 재희는, 이제 이곳에 없다.

 

박상영, 재희

 

 

 

 

 

2019. 9. 17. 01:10